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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아프리카 부채 위기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정치적 함의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김은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부교수 2024/10/11

지난 10여 년간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은 재정 악화와 부채 증가를 겪어왔으며, 최근에는 부채 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SA)의 총 대외 부채는 2022년 1조 1,200억 달러(약 1,535조 1,840억 원)에서 2023년 말 1조 1,520억 달러(약 1,579조 464억 원)로 증가했으며, 2024년 부채 상환금은 1,630억 달러(약 223조 4,241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0년 부채 상환금 610억 달러(약 8조 6,127억 원)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부채 위기의 외부적·내부적 요인
아프리카 국가 부채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당시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식량 및 연료 가격이 상승하고 해외원조가 정체되면서 대외채무가 증가했고, 2013~2014년 이후에는 낮은 글로벌 기준금리, 달러 약세, 개도국 수요 증가 등이 부채 증가를 부채질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 등 여러 외부적 충격이 결합되어 SSA 국가의 경제 성장 둔화, 공공재정 긴축과 함께 부채 규모 증가를 촉발했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통화정책과 인플레이션 및 원자재 가격 하락은 SSA 국가들의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대출 상환 비용이 증가하면서 외채 상환 능력을 저하시켰다. 또한, 일반적으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주로 선진국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어, 아프리카 국가들의 금융 자원에 대한 접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과 같은 기관들이 금융 지원을 제공하긴 하지만 이는 빈곤 완화 및 기후 변화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프리카 국가들의 즉각적인 유동성 위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신용 평가 기관들의 편향된 평가는 아프리카 국가의 투자 유치에 불공평하게 작용하 기도 한다. 그 결과, IMF 자료에 따르면, SSA 지역 GDP 대비 평균 채무 비율은 2023년 60% 이상을 기록했으며, 잠비아(115.3%), 카보베르데(112%), 짐바브웨(98%), 모잠비크(97%), 콩고 공화국(95%) 등은 지역 평균을 크게 웃돈다.

아프리카 부채 위기의 원인으로 대외채무의 성격이 변한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의 대외채무는 다자간 기관과 파리 클럽 관련 채권자에 의해 지불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 채무 환경은 다자간 기관보다 더 비싸고 단기적인 양자 및 상업적 채권자로 이동하였다. 세계은행 자료(2023)에 따르면 현재 SSA 총 외채의 23%는 다자간 채권자가 보유하고 있으며, 34%는 양자 채권, 44%는 유로본드 채무가 차지하고 있다. 유로본드와 같은 상업적 채권으로의 전환은 높은 이자율과 짧은 상환 기간, 경제 둔화나 위기 상황에서 유연성이 떨어지는 불리한 대출 조건 등을 수반하고 있어 위험성이 높다.

중국과의 양자 채무가 증가한 점도 채무 환경 변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은 여러 아프리카 정부와 약 1,200건의 대출 계약을 체결했으며 총액은 1,600억 달러(약 219조 3,120억 원)에 이른다. 2022년에는 중국이 아프리카 최대 양자 채권국이 되었으며, 아프리카의 공공 및 민간 외채의 약 12%, 즉 870억 달러(약 119조 2,510억 원) 정도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투명성 부족, 부채 지속가능성 국제 기준 미이행으로 인해 SSA의 자원을 착취하려는 포식적 대출자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으나, 급격히 커진 양자 채무 규모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의식하여 최근에는 다소 협조적인 대응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2019년과 2021년 콩고 공화국, 2023년 가나와 잠비아의 채무를 조정하는 데에 유연성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환의 순현재가치는 증가할 수 있으며 잠비아의 사례에서처럼 민간 채무의 재조정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 각국 정부의 관리가 신중하지 않으면 중국에 대한 채무의존도는 높아지고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채 위기의 원인을 모두 외부 충격 때문으로 돌릴 수는 없다.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의 빈약한 세수 기반은 재정 불균형을 초래한다. 게다가 정부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 비용을 증가시켜 국민의 요구를 해소해야 하는 부담을 항상 안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 상태 악화에도 불구하고 정부 부채를 통한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경우가 많아 채무 위기를 더욱 악화시 킨다. 특히, 정부 지출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예상보다 수익을 남기지 못하면 부채에 시달리게 되기도 한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 또한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채무 이행 능력을 감소시킨다. 규제는 안정성을 보장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데 필요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투자를 억제하여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제한한다. 경제 성장 둔화, 재정 적자 확대 등을 동반한 국가 부채 위기는 공공 서비스의 중단 및 축소를 의미하며 물가상승과 실업률 증가로 이어져 국민 생활 수준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

채무 면제와 책임금융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2020년 잠비아와 가나, 2022년 말리, 2023년 에티오피아 등)가 채무불이행(default)을 선언했다. 이 밖에도 케냐, 모로코, 나이지리아 등이 현재 부채 위기에 놓여있다. 채무불이행과 채무 면제에 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먼저, 채무불이행과 채무 면제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는 견해이다. IMF의 지원을 요청할 경우, 엄격한 긴축 정책을 채택하게 되어 정부 지출을 크게 줄여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자본이 유출되고, 만기 단축, 이자 증가로 국가채무관리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개발도상국에서도 이전에 비해 국내 연금 및 보험 기금이 정부 부채 자금 조달에 기여하는 비율이 커지면서 채무불이행이나 채무 면제는 국내 투자자의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채무 면제는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으며 계속적으로 채무를 탕감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여 도덕적 해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채무불이행은 국가 재정 악화의 심화를 막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디폴트를 선언함으로써 채무 이행을 중단할 수 있고 채무조정을 통해 새로운 협상 조건을 논의하고 IMF 등에 의한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가나는 중국, 프랑스와 양자 협상을 통해 대외채무 54억 달러(약 7조 4,017억 원)에 대한 구조조정 협약을 체결했다. 이 합의는 130억 달러(약 17조 8,191억 원) 규모의 국제 채권 가치를 거의 40% 줄이게 된다. 조정 기간이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잠비아도 협상에 도달했으며, 에티오피아의 채무조정안도 긍정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 위기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과 거버넌스 약화
그러나 디폴트 이후 채무조정이 이뤄진다 해도 부채 위기와 경제성장 둔화와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한다. 2021년 이후 차드, 말리, 수단, 기니, 부르키나파소, 가봉, 니제르에서 7건의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이들 중 대다수 국가가 국가 채무 위기에 놓여있다. 말리는 군사정권의 5년 통치 계획을 발표한 이후,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의 제재로 인해 세계은행과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자금 지원이 중단됐고 이에 따라 채무 상환이 어려워졌다. 2024년 2월 말리 군사 정권이 선거 일정을 발표하면서 제재는 해제되었으나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니제르 역시 ECOWAS의 제재로 인해 미국의 원조 등 외부의 도움이 막힌 상황에서 수 차례 부채상환 시기를 놓쳤다. 부르키나파소의 경제적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세 국가는 정치개혁을 단행하는 대신 ECOWAS 탈퇴를 선언했다. 

반대로, 국내 무력분쟁이 부채위기를 야기하기도 한다. 에티오피아는 2020년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10년 이상 빠른 성장을 경험했으나, 내전 이후 IMF의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 중인 수단 내전은 대규모 이주로 인한 노동력 손실을 야기하며, 전쟁에 가뭄까지 더해져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무력 분쟁은 부채상환 능력과 의지를 저하시켜 부채상환 비용을 증가시키고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진다.

부채 위기는 이외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시위 발발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케냐, 나이지리아 등에서 Z세대로 불리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시민들은 잘못된 국정운영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과 무책임한 국가채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득권층의 비합리적인 결정과 도덕적 해이가 빚은 경제 위기라는 결과를 젊은 층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면서 실업률 증가, 빈부격차 심화 및 경제적 배제 등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고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채 위기와 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은 새로운 정치변화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아프리카의 예와 같이 몇몇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서방의 지원에 의존해 왔던 모습에서 주권을 강조하며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니제르의 새 군사정권은 극단주의 활동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던 미국과의 군사 협정을 종료하고, 러시아군의 니제르 진입을 허용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는 ECOWAS를 탈퇴하였으며, 대신 사헬국가연맹(AES: Alliance of Sahel States)을 창설하고 CFA프랑 사용을 거부하는 등 독자적이고 고립주의적인 노선을 채택하며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편, 청년층의 반정부 시위는 정부 재정의 편향적이고 방만한 운영, 부정부패,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 등을 비판하며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경각심을 가지고 정치적·경제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 채무 위기를 완화하고 필수 물품 수입을 재개하기 위한 전략적 채무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후견주의적 행정이 아닌 공정한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도하고 편향적인 재정 지출이 지속되면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증가해 정치적 불안정은 더욱 커질 소지가 크다.

결론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고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함에 따라 아프리카 국가 부채 위기를 해결하고 그들의 경제성장을 촉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지원과 관심은 IMF 등 국제 기구가 제공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과하였다. 따라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효율적이고 계획적인 지원과 협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정치적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무조건적인 지원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반복적인 경제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이후 아프리카 국가 부채 위기의 긍정적인 측면은 과거와 달리 시민의식이 높아져 개혁의 대상과 목표가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들의 굿 거버넌스 확립과 시민사회 활성화 지원을 지속·강화해야 할 것이며, 군부 정권에 의한 권위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해서도 AU, AfDB, ECOWAS 등 역내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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